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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e
Sangjin Park
Title
“ A profound sense of freedom projected onto soil and one’s identity.”
Published Date
October 6th, 2023




        Editor’s note
        October 16th,     


흔들리지 않는 것도 기량이었다.
자유분방함 속 당당함, 명쾌함, 쾌활함은
끊임없는 집요한 노력으로 굳어진 단층이었던 것이다.

오랜시간 흙과 함께 해서 일까,
선생님 께서는 ‘브라운Brown’ 색이 좋다고 하셨다.


디코이 인터뷰의 세 번째는,
끝없는 노력과 인내, 그리고 호기심 어린 열정 가득 약 50여년을 ‘분청사기’ 한 장르에 몰입을 쏟아온 장인의 시선을 탐색하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인의 일대기 속에서 동력을 찾아 내는데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시대를 관통하는 에너지의 자취에는 어떤 스토리가 녹아있을까?

도시와 조금 떨어진 녹록한 정기를 받는 이곳 개천요 작업장에서 엿보고 들었던 몇 개의 일화들은 누군가의 창조물은 그의 아이덴티티를 담고 있다는 말을 증명한다.

        문화재 선생님을 뵙고자 자유분방함의 에너지의 맥이 만들어지는 ‘개천요(開 天 窯)’를 방문하였다. 이곳에서 수십 년을 오롯한 한 길을 만들어 가며 아직도 반짝이는 꿈을 가지신 분청사기장 박상진 무형 문화재 선생님의 일대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맑은 초가을의 햇살이 개천요(開天窯) 를 너르게 비추던 날. 수수한 작업복을 입으신 채 천진난만함을 간직하신 선생님께서는, 마치 방금까지 작업을 하고 계셨다는 듯이 작업복을 입으신 채로 맞이해 주셨다. 무형문화재 41-2호 분청사기장 박상진 선생님께서는, 1987년 개천 요를 설립한 이후 현재까지 약 36년간 분청사기의 정신을 존속하시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분청사기Buncheong라는 도자기 장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말은 즉, 아직도 잠재된 가치가 무궁무진 하다는 뜻이라 믿고 있다. 한국의 분청사기는 ‘고려의 쇠퇴와 조선의 건국’이라는 과도기적 탄생의 배경을 가지고 나타난 장르이다. 그런 배경을 솔직하게 드러내듯,  분청사기의 외형은 깨끗하고 화려한 느낌보다는 자연스럽고 미묘한 푸르스름하고 따뜻한 색채의 혼합과 티끌과 같은 질감이 주를 이뤄 보는 이로 하여금 수수한 매력을 전달한다.

    분청사기를 성형할 때에는, 세심함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치지 않는 호기심. 세심함과 호기심의 조합은 영화 속 열린 결말을 떠올리게 했다. 물레는 한 편의 영화처럼 한 쇼트 한 쇼트가 쌓아 고도를 향해 달리는 서사의 전개와 같았다. 마치 처음부터 나에게 쥐어진 결말처럼.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모호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궁금증은 또 새로운 도전과 에너지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자유로움 속에서도 높은 기준의 표현적 완벽성이 추구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이자 한 작업가의 일대기 서사를 엿들은 관객의, 긴 머리글이다.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감동은 완벽함에서 오는 것이 아닌 ‘완전한 감각’에서 온다는 믿음이 짙어졌다. 선생님의 바람처럼 ‘나’를 너머 현대와 순환하는 우리나라 전통의 분청사기가 오래, 또 멀리 에너지를 지속하길 소망한다.

이 인터뷰는 세대를 넘어 옛것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에 관한 개인적 고찰이다. 그리고 공유하고 싶은 감상이 있다면,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몰입과 꿈, 그리고 열정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모든 변화와 생산은 ‘나’로 부터 시작한다는 말처럼, 선생님께서는 아직 ‘나’부터 감동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분청사기에 대한 창작 탐구를 지금까지 진행 중이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세대의 차이를 넘어, 도자기를 통해 절대 타협하지 않는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 오신 선생님의 집요한 창작의 정신을 마주할 수 있어 뜻깊다.

앞으로도 경기도 광주에는 분청사기의 에너지가 녹녹하게 스며들게 될 것이다. 어느 곳에서는 수십 년을 이어서 그가 분청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A profound sense of freedom projected onto soil and one’s identity.”


에디터 박 서연 올림


✶ Exhibition Now ✶


흙과 천의 이야기

박상진 분청사기 展
& 최양숙 조각보 展



일시 : 2023년 10월 10일 (화) - 10월 22일 (일)
장소 : 성북동 리홀 아트 갤러리


✶ ART CAREER ✶


박 상진 (분청사기장)

1958 전라북도 정읍 출생
1987 개천요(開川窯) 설립
1992 경기도 우수공예인 지정
2011 無形文化財 제41호 (粉靑沙器匠)지정
2017 현, 개인전 8회 단체전 30회

KBS 생활도예전 금상, 동아공예대전 대상,
경기도공예품대회 대상, 광주시 제2회 문화상
소사벌 공모전 대상, 대한민국 현대도예공모전대상
전라남도 디자인공모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정수미술대전 심사위원,
37회 전국공예품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명장 도자분과 심사위원,
경기디자인공모전 심사위원, 전통공예산업대전 심사위원(KBD주관),
한국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2회)





E
        이제 이 기사 아티클을 볼 구독자 분들을 위한 소개 말씀을 한번 여쭤볼 수 있을까요?                         
SJ                                   
        네. 네. 네. 실컷 물어봐요.
E
        네. 자유롭게 소개 한번 해주세요 선생님.

SJ
        나에 대해서?
E
        네.





SJ
        그... 되게 쉬운 얘기 같은데, 그게 어려운 얘기인 것 같네. 왜냐하면, 나는 도자기 하면서...  나한테 스스로 무슨 질문을 던졌냐면... ‘네가 진짜 도자기 좋아하니?’ ‘좋아하니까 하지’‘글쎄 내가 정말 이걸 좋아하나?’ 그런 생각들도 참 많아. 그런데 이제 도자기를 내가 좋아해서 하는데도... 이중에도 특히 분청사기 같은 게 나하고 잘 맞더라고. 왜냐하면 내가 성격이 좀 거칠어. 거칠고 또 섬세할 때는 또 무쟈게 (무지하게) 섬세해.

도자기가 다른 도자기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분청사기는 대표적인게 거칠고  부드러운거. 그리고 거칠지만 또 섬세하게 다듬어져야 되는 게 분청사기야.




















E
        선생님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되게 지금 제 나이 또래 친구들이 그렇듯이 도자기에 대한 장르를 ‘백자’ 아니면 ‘고려 청자’ 이렇게 알고 있잖아요. 근데 어쩌다가 ‘분청사기’ 장르를 선택하게 되셨는지 조금 궁금해요. 저도 분청사기를 알게 된 지얼마 안 됐으니까요.


SJ
        처음에 도자기를 배울 때는 청자로 배웠어. 청자로 배우고 또 그 다음에 백자를 배웠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 분청사기를 배웠는데 청자도 그만두고 백자도 그만둔 이유가 청자는 사실은기적적인 것 같기도 한데 굉장히 너무 손이 많이 가. 어떤 손이 많이 가냐 하면 조각하다 틀리면 또 지우고 조각하다 계속 이렇게 지웠다-다시 하고-지웠다-다시 하고 그게 짜증이 났고. 또 이제 백자 같은 경우는 지금도 좋아. 좋아하기는 하는데 백자는 또 나랑은 또 안 맞는 거야.
안 맞는 이유가 그 역시도 청자 같다는 조금 덜하긴 한데 ‘판박이’ 같은 그런 작업의 연속으로 느껴지더라고. 그러면 분청사기는 왜 좋냐, 나랑 잘 맞아떨어져. 왜냐하면 분청사기는 물레 자체 그래. 이제 성형이라 그러지. 성형 자체도 그렇고 작업 과정들이 보통 분청사기 일곱가지 정도 되잖아. 일곱가지 정도 보면 다 독특한 기법들이지. 그 기법에 빠져버렸고.

그리고 청자, 백자 할 때는 배울 때 색이 딱 정해져 있어요. 청자는 어떤 색이고 백자는 어떤 색이고. 그런데 분청은 물론 문헌상에는 정해져 있지만 그거와 관계가 없어. 쉽게 가지고 화장터를 이용한 도자기는 다 분청이라고 보고. 특별한 색도 필요 없고. 그리고 불을 땔 때마다 이번에도 작업 때문에 작업을 여러 가지 했지만은, 얼마 전에 뗀 거 하고 지금 (불) 뗀 거 하고 다 달라. 그러니까 이거는 너무 신비로운 거야. 실컷 만들어서 ‘이야~ (이번 꺼 아주 훌륭하다)’ 이렇게 기대를 엄청 많이 해, 근데 막상 (가마에서) 나오면 형편 없기도 하고, 그니까 감을 잡을 수가 없어. 어떻게 나온다? 대략 분청은 이런 색이 나와 뭐 뭐가 좋은지는 알지마는 이런 색으로 나올지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어.
성질이 급해서 그런지, 보다가 궁금해서 못 견디겠어.이게 왜그러냐 이게 불의 변화 인데, 불 떼는 데이터가 다 있지. 근데 우리는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아, 처음 배울 때는 데이터대로 하는데, 지금은 불을 뗄 때마다 난 불을 다 다르게 떼 보는거지. 불이 미쳐가 날 뛸때 불을 뺀단 말이야, 그럴 때 빼 버리면 실패도 하는데 기가 막히게 또 나와, 그니까 나는 실패를 하더라도 기가 막힌 작업을 원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을 떼봐. 불을 그렇게 많이 떼 봤지만 그래도 아직 모르겠어. 진짜로 아직 모르겠어. 원래는 불을 때고 가마를 열고 오래 놓을수록 자연스럽게 식어서 좋아, 그런데 그렇게 불을 많이 때고 했어도, 궁금해서 못 견디는 거. (키득키득) 아우 그거 (성급한 성질) 못 고치겠더라고, 아 이놈의 것은 도대체가 이상한 거야.

대부분 아침에 불을 때고 저녁에 불을 끊고, 저녁에 불을 때면 아침에 불을 꺼. 저녁에 떼는 이유는 불의 색깔을 낮에는 근데 그게 안보이잖아. 밤에 봤을 때 불의 길이라던가 색깔이 선명하게 보이지. 불을 때고 ‘이거 어떻게 나왔지? 이거 어떻게 나왔을까?’ 궁금해서 잠을 못 이뤄. 그렇게 많이 셀 수 없이 불을 땠는데도 그렇더라고.



















E
        그럼, 저는 이제 많은 기사를 통해서 선생님께서 도자기를 15살 때부터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현재 ‘예순여섯’의 연세까지 약 50년간 단 하나 ‘분청사기’만을 위해서 걸어 오신 거잖아요. 그렇게 걸어 오실 수 있었던 것은 ‘그치지 않는 호기심’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SJ
        나는 사실 어릴 적부터 그랬어. 나는 뭘 만드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고, 호기심이 무지하게 많은 사람이야. (사연을 하나 들려주자면) 옛날에 보면 우리 동네에 스피커가 있어서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쪼그마한 사람들이 거기 안에 들어가서 노래하고 방송하는 거래. 진짜 그런 건 줄 알고 다 뜯어봤는데 아무것도 없는 거야.

보면 또 지는 거 진짜 싫어하고 다 부수고, 뜯어보는거 좋아하고 그랬어. 도자기를 하면서 물론  실험적인 것도 이 많이 하는데 다른 거(분야)를 내가 해보겠다? 라는 생각 자체를 안해 본 사람이야. 나도 하고 싶지 근데 난 도자기 자체에서도 너무너무 아직도 해보지 못한 게 너무나도 많은거야. 내가 하기 나름인거지. 그리고 분청사기는 내 성격하고 너무 맞는게 사실은 내 생각대로 이뤄지니까. 근데 이건 왜냐하면 기본적인 작업 기법을 알고, 그러니까 분청사기를 보면은 스스로 감각이 없으면 이건 백날해도 안되는게 분청사기야.




















E
        그 감각이라는게 어떤 감각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SJ
        그니까, 느낌인데, 예를 들면 나를 쉽게 보통 전통작가라고 치는데, 근데 내가 지금 전통 자기를 하느냐, 그건 아니야. 내가 원하는 것은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원하는거지, 그걸하려면 ‘전통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림으로 예를 들어서 석고 데셍을 못하는 애들이 추상화한다는 거랑 똑같은거지. 기본적으로 석고 데셍을 잘해야 되는거지, 그렇다고 해서 석고 데셍을 아무리 잘해도 그건 작품으로는 인정을 못 받아.


SJ
        그니까 ‘나만의 감각’은 타고 나야해. 타고 나야하고 그만큼 집착을 해야겠지. 요즘은 분청사기가 ‘자신의 색’을 정말 잘 표현 해 낼 수 있는 장르야.            
                                                                                                 


SJ
        백자나 청자는 손톱자국이나 기스가 나면 그것을 유약으로 덮어버리거든,  근데 분청은 표시 그대로 나. 그니까 분청사기는 자기의 느낌이 없으면 안 되는 이유가, 선 하나도 그렇고 색감 자체도 그렇고, 자기가 볼 수 있는 눈이 틔어있지 않으면은, ‘이게 좋다’던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마는 자신의 기준이 있어야 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눈이 틔어야 해, 눈이 틔지 않으면 기술자에 불가하니까. 예술도 기능이야. 기능이 없으면 안돼 절대적으로. 기능때문에 연습하는거야. 기능때문에 그런다? 그럼 모작을 할 수 있겠지, 근데 그것은 생명력이 없어.

E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선생님께서)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시면서도 자신의 색채를 탐구하고자 노력하셨는지 와 닿는 것 같아요. 저는 이것도 아주 궁금했어요. 요즘 시대에 무형 문화재와 같이 ‘문화재’라는 가치의 영역은 도달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요즘 세상은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고 급변하고…그렇잖아요? 이러한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의 굴레에서 무형문화재의 위엄은 얼마나 오랜 기간을 거쳐야 이룰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어요.

SJ
        예를 들면은, 무형문화재는 실질적으로 오랜 경험이 있어야 해. 만약 경험이 없게 되면은 그 디테일을 볼 수가 없어. ‘깊은 멋’이랄까, 그런 것을 끌어내려면 장기적으로 갈 수밖에 없지. 예를 들면 난을 칠해도, ‘난( )’ 못 칠하는 사람 없잖아? 근데 난을 하나 칠하더라도, 수십만 번을 해야 제대로 된 ‘난( )’이 나오는거지. 무형문화재는 그러니까, 우리 전통문화가 넘어지면, 그 나라의 정신세계가 무너진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옛것을 그리워하고 어쩌고저쩌고…(말이 많지만) 도자기에는 그 시대의 시대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까. 

(역사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며는)고려 때도 백자를 만들기는 했어, 하지만 그때는 백자처럼 하얗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던 시대가 아니었지, 그때 당시 백자를 보면 때 낀 것처럼 뭐가 섞여 있지. 그러다가 고려가 망하면서, 도자기도 청자도 망했고, 고려 때만 해도 먹을 것을 조금 대줬는데, 나라가 망하니까 그런 게 폐쇄돼 버렸어, 그렇게 되니까 망하고 (기능) 공들이 나가서 살아라 이렇게 풀어지면서, 그들이 맘대로 가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거지, 뿔뿔이. 분청을 보면 정말 신기해.

지역마다 (실제로 지역별 분청의 무늬와 형상이 다르다.) 분청이 다르잖아. 이것이 참 신비야, 옛날에 계룡산 쪽에는 산 모양의 분청이 많이 발달했고, 부산 쪽은 인화문 분청사기가 많이 발달했고, 또 전라도 광주 쪽에는 조화, 박지문, 여기 광주 밭에는 상감 본청을 많이 했었고, 학봉리 분청사기, 천안 분청사기, 이렇게 다 달랐다는 것이지, 그것이 참 신비로운 거야.

분청은 그럴(정해진 곳에서만 흙을 끌어 쓸) 필요가 없어, 어디 가서도 흙이 있으면 만들 수 있으면 다 만들 수 있었어. 여기 다르고 저기 다르고, 그러니까 색깔도 다양할 수 있었지. 분청사기는 그러니까 보면 생활이 넉넉하지 않은 개인 혼자서도 만들 수 있는 거였어. ‘기능’만 있으면 됐으니까, 처음에는 고려의 느낌이 많이 묻어 있었지만, 나중에는 분청사기가 독창적인 장르가 되어 버렸지. 점질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뀌었던 것이 분청이야.

















E
        선생님께서 ‘무형문화재에 대한 기능을 익히고 감각을 가져야 한다’ 이 주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여러 가지 말씀을 공유해 주셨어요. 저는 또 궁금한 게,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문화재 평가 위원장으로도 계셨으니까, 어떤 부분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하네요.

SJ
        옛날에는 ‘인간문화재’라고 불릴 때, 기능만 있으면 됐어요. 거기에 대한 역사적 지식과 전반적인 것들이 다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기능만 있다면 그것은 명장으로 가야 해요. 명장이랑 무형문화재는 갭이 커. 자 기능은 필수다. 그 외를 두루 갖춰야 한다.

명장은 쉽게 말해 디테일이 들어간다면 보이는 기능을 갖추면 되는 거지. 하지만 무형 문화재는 보이지 않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야 해. 그게 ‘예술성’이지.                                                                                        












SJ
        그러니까 ‘공’이 되서는 안 되고, ‘가’가 되어야 한다는 거지. ‘공’과 ‘가’의 차이는 뭐냐, ‘공’은 배고프면 허리띠를 풀고 아무거나 먹어, 그러나 ‘가’는 배고플수록 허리띠를 조이고라도 배고픔을 참는 사람이야. 그 차이가 있단 말이야.

E
        되게 어렵다, ‘예술’이라는 것도 보는 사람의 해석이 다 다르잖아요. ‘무형 문화재’라는 국보적 인물은 제가 생각했던 부분은 ‘국가로부터 실력과 기능적인 부분을 인정받은 장인’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SJ
내가 무형문화재를 지원할 때는 단 한 번 이었어. 평생 내게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기회였던 것이었기에 단 한 번에 끝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7년 정도를 거기에 내가 모든 것을 올인해 버렸어. 나는 내가 ‘이것만을 해야겠다’고 느꼈지.



E
        전 여기에서 그럼 선생님께서 ‘첫 심사’를 받으시던 날은 또 어떠셨을지도 궁금해지네요.

SJ
        난 그런 사람이다. 자신만만했지.
나는 마당도 있잖아, 자갈을 다시 깔아버리고, 아침에 거기서 물을 챡 뿌리고, 화장실 직접 내가 다 하고, 꽃까지 꽂고, 전시장도 딱 해서 깔끔하게 하고, 그렇게 실제 작업을 하는데, 심사위원들이 딱 오는데, 내가 ‘을’이잖아. 어쨌든 여기에서는. 전엔 ‘갑’이었지만, 약간 비아냥거리더라고, 아 정말- 발 물레를 그래서 차는데, 무형은 되지 않아도 충분하신데 뭘 또 무형을 하시려고.”아우 비아냥거리는 거야. 그래서 내가 물레를 멈췄지! 패버리려고, 근데 그렇게 하면 억울하잖아 (패버려서 )끝나면 끝이니까, 참았지. 말 잘 들었지. 근데 내가 잘하거든?

조각도, 물레도, 기법에 대해서도 맨날 파고들었는데 그걸 모르겠어? 허벌나게 이야기하니까 지네들이 오히려 배워 버리는 거지. 근데 나를 개똥으로 봤었거든. 개똥이란 표현은 안 했지만 나는 이렇게 준비돼 있으니까, 자신 있으니 심사해 보라 그런 마음이었지. 그래서 잘 끝났지.

E
        선생님 그러면 그렇게 많이 준비하시고 마무리하시고 나서는 어떠셨어요?

SJ
        나는 자료도 만들어 정리해서 심사위원한테 다 줬어.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준비했습니다. 가급적으로 이 테두리 내에서 질문해 주시면 제가 정확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되도록 이걸 떠나서 분청사기 심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분청사기에서만 질문을 주십시오.”



                                                                                 




E
        와, 그때부터 (요즘 표현으로) 소위 말해 ‘MZ세대’ 셨네요 선생님, 일찍이.
SJ
        근데 심사위원들이 보더니, 지들보다 훨씬 낫거든, 신기하고, 그러니까 딱 하는 얘기가 “선생님, 저 이거 하나 가져가도 돼요?..” 그럼 게임 끝난거야. 심사 다 끝나고 나는 거기서 심사 끝나고나서 아예 쭉 뻗어서 쓰러졌어 대낮에, 5시간을 줄이어서 자버렸어. 그리고 연락이 왔어 (심사 합격했다고).

E
        실례지만 그때 연세를 여쭤볼 수 있을까요?

SJ
        54세인가?
E
        선생님께서는 (도자기를 업으로 삼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아실 텐데, 선생님의 견습생 시절 중 가장 힘들었던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SJ
        요즘은 배우고 싶으면 배울 수 있는 수단이 참 많아. 유튜브나 학교 등등,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순서밖에 안되지만 근데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지.), 이것(도자기 물레성형) 도 기술인 줄 알고, (기술을 가르치는) ‘대장’이 있었어, 대장이 작업실 문을 잠궈버렸지. 배우지 못하게. 자기들 밥벌이 뺏길까봐.
E
        아아… ‘청출어람’ 할까 봐 그렇구나.
SJ
근데 이쒸... 못하게 하는 거야 기본적으로 작업실 가면은 터져, 담배 피우는 곰방대가 있거든, 그걸로 폭폭 때리면 도자기 만들 때 기구가 있어, 그러면 (맞은 곳에) 혹이 폭 올라와, 근데 그러거나 말거나, 옛날 창문은 이렇게 하면(침으로 꾹 뚫으면) 다 뜯어져서 뜯고 들어가서 배우고 그랬어. 근데 성형하는 사람이 나한테 질려버린 거야.
E
        네, 아-선생님께서 그러면 대장분이 계속 혼을 내고 거부하는데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신 거네요?
SJ
       그럼 그러던지 말던지.
E
        패기!
SJ
        응 그렇지. 야 ‘너만 배우면 괜찮은데 딴 놈들도 배워서’ 안된데, 그러면서 너만 배우라고 하면서 키를 줘버리더라고. 근데 키를 주니까 받아서 좀 했는데 재미가 없어져서 안 했잖아 (키득키득). 좀 오기가 생겨서 했었는데.

E
        일본 도자기와 한국 도자기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을까요?

SJ
        (요약) 당시 한국 도자기 한 점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일본인들에게는 꿈이었었어. 서로 도자기 달라고 싸우기도 했어. 일본의 공업 도자기는 상당히 앞서 있어. 근데 수작업 같은 것은 우리보다는 떨어져. 전에 유명한 작가 집에 소개받아 갔는데, 공장이 어마어마해 공장에서 여러 사람이 만들어. 그건 공산품이야, 가격도 엄청나게 싸. 그리고 자기는 자기 것을 하면서 1년에 몇 점만 만들지. 그럼, 그 작품 몇 점이 또 팔려. 그건 가격이 어마어마해. 쇼를 잘하는 거지. (예를 들어) ‘찻사발’을 몇천 개 만들어서 가마에 집어넣어. 그리고 서너 몇 개 남기고 싹 다 깨버려. 그게 머냐, 몇천 점을 가지고 있는 게 쓸모가 없다는 말이야. 어마어마하지. 그렇게 보여주기로 하는거지.

E
        오프 더 레코드네요, 선생님 하하하
SJ
     
  그래. 나는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야. 다 쓸 수 있어야해. 장식용 말고는 다 어디든 쓸 수 있단 말이야.
E

        분청사기만의 기법 중에서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기법이나 도자기를 소개 시켜 주실 수 있으실까요?
SJ
       
기법은 사실은 ‘면 상감기법’ 나 저런 거 좋아하거든, 상감이 아닌 넓게 잡은 상감, 그런 것들이 포근하게 느껴지더라고. 피카소 그림을 보면 피카소 나중의 도자기 작업을 봐봐. 우리는 그랬어 피카소는 분청사기를 공부했다고. ‘면 상감’을 난 비교적 좋아하는 편이야. 또 ‘도돌기법’.
E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최고의 분청사기는 어떤 것일까요?
SJ
        헛,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지.
E
        아 스스로 인정하시는.
SJ
        그럼.
E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SJ
‘내가’ 감동하여야지. 일단 기본적으로 내가 보고 내가 감동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최고의 작품이지.



E
        선생님께서 많은 경험을 통해서 실력을 갖추셨고, ‘내가 감동할 수 있는 도자기’라는 말씀에서 많은 것들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SJ
       
내가 지금까지 도자기를 하면서 그래도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은 몇 점 있었는데, 사실 내가 지금 땅을 치고 통곡하고 있는 게, 그때 또 만들 수 있을 줄 알고 (그 도자기를) 팔아버렸어. 나는 다시 (그 도자기 그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에는 절대 그 형상 나오지 않아. 안돼, 끝이야.

E
        그럼 그때의 그 아쉬운 도자기를 묘사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SJ
     
  나 친구들이랑 강원도를 놀러 갔어. 강원도에서 사실 영감을 많이 받는데, 밤바다를 보러 (친구들과) 앞바다에 나간 거지. 등대도 있고, 그 앞(바다)에서 파도 칠 때 별 놈의 색이 다 나와, 너무 아름다운 거야. 도자기를 그 강원도에서 돌아와서 만들었는데 ‘규화’랑 국화 섞어서 만들었었어. 우와 근데 진짜 색감이 진짜 최고인 거야. (중략) 그래서 근데 내가 미련이 남아서 빨리 기억을 거슬러서, 만들었는데, 색깔이 그렇게 나오지를 않아, 불의 변화가 중요한데 절대 그 형상이 다시 나오지 않더라고. 몇십 번을 다시 만들어 봤는데 그 형상이 절대 나오지를 않아. 불의 변화가 없으면 절대 그건 못 쓰는 거야. 그래서 난 다 깨버렸잖아.. 변화가 안 나와. 그리고 나서 안 하잖아. 굉장히 속 터지더라고. 그렇게 좋은 것은 사실 남겨놔야 하는데.

E
        지금은 마음 속 환상으로 남은 도자기가 되어버렸네요.
SJ
        아우 그 불의 변화가 진짜 희한하더라..  
E
        강원도에 어떤 강이었는지 뜬금없지만 여쭤볼 수 있을까요?
SJ
        ‘초상 콘도’, 강릉 앞 바다. 그때는 제일 좋았었는데, 지금은 다 망했대.

      그럼 마음에 남는 작품에 관한 인연이 그 일본인 분이시겠어요.
SJ
       
그럼
E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아쉬우셨어요?
SJ
        그럼, 팔 생각이 없었는데, 배열, 터치, 그림도 다시 그렇게 못 그려.
E
        그 도자기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SJ
        처음엔 궁금했는데 마음도 잊히더라고 하하하. 귀얄… 멋져 버렸어.


E
        이번에는 선택의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흙으로 살기’ vs ‘불로 살기’, 둘중에 하나를 고르시자면요?

SJ
       
흙이지, 난 불 무서워. 집사람은 자기 죽으면 화장시켜 달래, 근데 난 죽어서도 뜨거운 거 싫어, 화장 싫어, 했지. 불은 그 붙은 뗄 때마다 힘들어, 불안해. 불을 어떻게 때냐면은 난 가마재임을 할 때, 난 이미 어떻게 불이 도는지 생각하고 불을 재임을 한단 말이지. 어떻게 하는지 알아. 근데 너무 어려워. 너무 어려운 건 싫어. 흙은 중간에 쉬어도 되는데 이놈의 불은 멈출 수가 없어 계속 해야 해 그거 얼마나 머리 아파 아이시. 머리 아파.

E
        하하하 선생님 캐릭터 정말 너무 확실하세요.
        그럼, 선생님 이제 앞으로 예정된 전시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SJ
        근데 앞으로 이제 전시 잘 안 하려고, 전시 저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가. 안 하려고 했는데 재밌더라고. 성북동은 갤러리 쪽은 부자들만사고, 밑에는 서민들만 사는데, 부자들은 밑에 동네에서 차 한 잔도 마시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그게 너무 웃긴 거야. 그래서 그렇게 생각했지 ‘건드려 볼까?’ (그래서 하는 것도 있어) 서울에서 개인전하고 그러면 많이 팔려. 많이 팔려야 해. 그래야 다시 작업을 할 수 있으니까. 도자기 하려면 쩐 없으면 안 돼, 있어야 여러 가지 투자를 많이 하니까. (그렇지만) 이번에는 ‘좋다. 팔리든지 말든지 한번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이번에는 했지. 판매자는 신경 쓰지 말자. 편하게 내가 작업했던 거 구워서  갖다 내보자. 공교롭게 작품 준비하면서도 몸이 안 좋아서, 하우스를 짓다가 하지 말라 했거든 근데 거기서 떨어져서 팔이 빠져 버렸잖아, 그래서 고생하고, 또 그랬더니 회복될 만하니까 심장에도 호흡 못해서, 나는 심장이 이상 있는지 생각도 못 했지. 그때 잠깐 전시 중단시키고. 의사도 하지 말라고 말렸지. 실질적으로 작업은 안 아팠을 때 했던 작업이 꽤 있어. 다행히. 이번에 전시하면은 또 언제 할지는 몰라. 많은 사람이 와서 구경했으면 좋겠다.

E
        선생님께서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시면서 또 하나의 역경을 딛고 이겨 내셨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힘든 순간을 결국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SJ
       
작업을 해서 그래. 집사람도 힘들면 하지 말라고 해. 힘든 거 있으면 다 와서 도와줘. 안 해줘 버리면 한다가 또 망가지거든, 어려운 일도 있지마는 내가 다시 재도전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작업을 하므로, 작업을 하면 아픈지 몰라, 되게 좋아, 힘든지 사실 몰라, 아픔을 모르고 해. 하면 또 되. 칠순때는 잔치해야 하잖아. 칠순 되면 그때는 큰 데서 해야겠지, 예술의전당에서 하자고 하는데, 너무 거긴 시끄러워 그곳보다 더 좋은 곳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너무 시끄러운 곳은 싫고, 숫자가 적더라도 조용한 곳에서 관람하고 그런 곳에서 하고 싶네.




E
        정말 대단하다고 제가 느껴지는 부분이, 감히 타이틀을 붙이자면 아직도 여전히 ‘기대할 만한’, ‘기대가 되는’ 작가신 것 같아요.

SJ
        기대해도 돼. 전에 작품 준비하는데 아주 기가 막힌 형태가 나왔어, 가마를 재는데 좀 도와달라고, 그렇게 했다 초벌 할 때? 좋은 거 서너 점이 있었어. ‘아 이까짓 거 내가 들 수 있겠지’ 하고 쟀어, 그리고 무너져 버렸어. 기가 막힌 건데, 항아리인데, 거의 대칭처럼 나와서 대단했어. 사진을 찍어 놓을 걸 그랬어. 거의 완벽한 형태였어. 근데 폭삭 깨버려서 허탈했네.

E
       그럼, 앞으로 선생님께서 예정하고 싶은 이벤트들이 있으실까요?

SJ
고민을 많이 해야겠다는 거? 우연의 일치로 좋은 작품보다는 계획된 아름다움을 향하고 싶어. 그 생각하고, 이번 전시 끝나면은 작업을 할 거야. 그래 봤자 4년이야. 칠순 때 돼서는 뻔뻔하게 자랑하고 싶어.

E
        너무 멋있으시다. 존경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심장의 색채는 어떤 컬러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SJ
        아우 어려운 얘기만 해. 음… 아기 같다 그럴까? 운동하면서 숨차서 보호를 많이 해줘야겠다.
E
        베이비핑크? 농담이구요 선생님, 색깔로 표현해 볼 수 있다면요?
SJ
   
    나는 브라운을 상당히 좋아하거든.
E
        브라운. 알겠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질문을. 사랑하는 세 가지와 감사한 세 가지는 무엇이 있을까요?
SJ
    (고민의 순간도 없이) 없는데. 음… 도자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공기 좋은 데서 살아서 좋고. 감사한 것- 도자기, 별로 감사할 게 없는데, 아싯, 우리 손녀딸 있어서 감사하고…. 아! 소리 막지를 수 있는 공간에 살아서 감사하다. 나는 자다가 소리 질러, 그냥 질러 자동으로 노래도 하고, 나 병원에서 잠결에 노래해서 욕먹었잖아.

Thank you for joining the interview.
Interview & Photo
   Seoyeon Park
Interviewee    Sangjin Park

Copyrights 2023.Seoyeon Park. All rights reserved.
                                           





✶ ART CAREER ✶


박 상진 (분청사기장)
1958 전라북도 정읍 출생
1987 개천요(開天窯) 설립
1992 경기도 우수공예인 지정
2011 無形文化財 제41호 (粉靑沙器匠)지정
2017 현, 개인전 8회 단체전 30회

KBS 생활도예전 금상, 동아공예대전 대상,
경기도공예품대회 대상, 광주시 제2회 문화상
소사벌 공모전 대상, 대한민국 현대도예공모전대상
전라남도 디자인공모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정수미술대전 심사위원,
37회 전국공예품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명장 도자분과 심사위원,
경기디자인공모전 심사위원, 전통공예산업대전 심사위원(KBD주관),
한국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2회)

✶ Exhibition Now ✶


흙과 천의 이야기

박상진 분청사기 展
& 최양숙 조각보 展



일시 : 2023년 10월 10일 (화) - 10월 22일 (일)
장소 : 성북동 리홀 아트 갤러리